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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자금력, 일본의 조직력 그리고 한국의 개인기

기사승인 2019.11.28  17: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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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욱ㆍ화인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필자가 드론, 개인용비행체(PAV : Personal Air Vehicle) 등 무인기에 대한 규정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이번 2019년 11월 17~23일에 중국 난징에서 열린 ISO/TC20/SC16 미팅에 대해 현장에 대한 소식 및 소회를 공유하고자 한다. 기고에 앞서 표준 전문가는 아니므로 기고문에 ISO 표준에 대한 내용에 다소 간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음을 양해 부탁하며, 필자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ISO를 바라본 견해를 전하고자 한다.

   
▲ 행사 안내판에서의 필자. 2019 ISO/TC20/SC16은 중국 난징에서 열렸다.

먼저, 국제 표준화 기구(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를 간단히 소개하면, ISO란 여러 나라의 표준 제정 단체들의 대표들로 이루어진 국제적인 표준화 기구로, 1947년 출범하여 나라마다 다른 산업, 통상 표준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을 개발 보급하고 있다. 각국이 각국의 대표 기관을 지정하고 이 기관으로부터 추천받은 전문가들이 표준 개발에 참가하게 되는데, 의사 결정은 회원 기관에게 부여되는 1표의 투표권 행사로써 결정하는 방식을 채택되며, 국내의 경우, 국가기술표준원이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ISO 9001은 ISO가 규정하는 품질경영시스템의 운영에 요구되는 규정에 대한 것으로, 이 규정에 부합하면 객관 인증을 받고 자사의 품질경영 수행을 대외에 알릴 수 있다. 그러나 ISO가 관여하는 분야는 비단 이런 품질경영시스템 인증에 한정되지 않으며, ISO는 수십 년간 유아용 카시트부터 민항기 안전벨트까지 수많은 분야에 대해 용어의 의미나 요구사항 등의 표준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정의하고 있다.

필자와 필자가 소속된 화인특허법률사무소에서 무인기 관련 특허분석 등 여러 가지 조사분석을 다양하게 수행하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무인기는 그 특성상 기술뿐만이 아니라 관련 규정이나 표준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무인기 관련 표준 및 규정 등을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의도로 실제 표준이 설계되고 채택되는 현장인 ISO 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항공 분야는 타분야에 비해 기술 개발이 가능하더라도 인증이나 규정상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은 실제 자동차를 연간 400만대 생산할 정도의 기술력과 생산력을 갖추고 있으나, 한국의 기업 중 어느 한 곳도 보잉이나 에어버스 등이 제작하는 민항기의 안전띠조차 직접 납품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는 아마도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인증 등 안전 관련 규정과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필자는 상상한다. 비교적 간단한 안전띠가 이 정도인데, 무인기의 비행제어장치(Flight controller) 등 주요 부분의 규정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분명히 약자가 좋은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강자는 표준이나 규정 등을 이용하여 약육강식의 논리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결과적으로 ISO는 각국이 자국의 부를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강점 및 단점을 갖는 분야를 고려하여 전략적으로 관련 분야의 표준을 강화하거나 무력화하는 총 없는 전쟁터라고 할 수 있으며, 필자는 운 좋게도 ISO 첫 참석부터 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 ISO 미팅 첫날 열리는 총회 현장. 미팅 첫날 각 워킹그룹에 참석하는 각국의 참석자가 모여서 전의를 다진다.

필자가 참석한 ISO 분과는 ISO/TC20/SC16으로 무인비행시스템(Unmanned aircraft systems)을 다루는 분과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ISO는 삼백여 개의 기술위원회(Technical commitees)가 존재하며, TC20은 항공기에 대해 다룬다. 다시 TC20 하위에는 항공우주전기 요구사항부터 페인트 등 재료분야로 나누어진 18개의 하위위원회(Sub committee)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열여섯 번째 하위그룹인 SC16은 무인비행시스템에 대해서 다루며, 다시 SC16은 일반사항부터 테스트 및 평가 분야로 나누어진 5개의 실무위원회(Working group)로 구성된다. 이번 중국 난징 ISO 회의에서는 5일간 5개 실무위원회 미팅이 열렸다. 5일간에 걸쳐 각 워킹그룹 미팅에 참석해 본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미국과 유럽의 관망 하에 중국의 자본력, 일본의 조직력 그리고 한국의 개인기로 채워진 미팅이라 할 것이다. 아시아에 많은 나라가 있지만, ISO 무인기 분과에서 활동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도의 국력과 관심이 있는 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정도라 판단되며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일본은 신에너지산업기술발전위원회(New Energy and Industrial Technology Development Organization)에서 조직적으로 많은 사람을 파견하며 자신들의 UTM 기술을 선보였다. 공역 내에서 항로(corridor)를 따라 여러 대의 드론이 충돌하지 않고 작업하는 실제 영상은 이미 관련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을 말해준다. 특히, 무인항공기 UTM에 대한 워킹그룹의 의장을 일본의 히타치 소속 박사가 맡고 있고, 실제 히타치사 드론 관제 솔루션을 공개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일본의 UTM 분야 기술 및 표준 강자를 위한 노력이라고 보이며, 일본은 정부와 민간이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판단된다. 또한, 일본은 기술전문가뿐만 아니라 표준 및 외교 전문가처럼 보이는 인력을 파견하여 기술이 아닌, 제도나 논리적인 측면에서 자국에 불리한 사항은 강하게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다. 미국 및 유럽이 이 전문가의 발언에 여러 번 동의하는 것을 봤는데 이와 같은 전문가의 역할이 주효했다고 판단된다.

중국은 한마디로 세계 최대의 소형드론 제조사인 DJI판이었다. DJI는 중국 국적의 직원뿐만 아니라 스페인, 독일,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연구원들을 ISO 미팅에 파견하였으며, 철저하게 제조업체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미팅 논의가 흐려지게 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DJI는 유럽과 미국 국적의 직원들을 이 미팅에 파견함으로써, 기존의 항공기 등의 강자적 위치에 있는 미국 및 유럽 의장들에게 자사의 의견을 좀 더 용이하게 관철시키는 현명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충돌회피 책임과 관련하여, 이탈리아 출신의 한 참석자가 제조사와 관련된 책임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데 반해, DJI 소속의 스페인 연구원은 운영자와 관련된 책임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반박하며 의장에게 갈등을 중재하도록 유도하였다. 아마도 이러한 전략을 취할 수 있는 근본 원인은 자본력일 것이다. 중국의 DJI는 기존의 보잉과 에어버스가 장악한 민항기 분야 대신 소형 무인기 분야에서 만큼은 표준까지도 강자가 되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분이 참석하였는데, 참여 숫자 및 개개인의 역량에 비해 성과가 다소 아쉬웠다. 이는 아마도 국내에 ISO 분과를 흉내 내고 대비할 수 있는 미러커미티(mirror committee)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상상하건대, 일본은 SC16의 5개 워킹그룹에 대해 미러커미티를 마련하여 충분히 금번 ISO 회의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ISO 미팅 전에 충분한 전략 회의가 있었다면 에트리 황현구 책임연구원이 제안한 무인기간 자동 충돌방지(automatic avoidance) 방법이 새로운 제안(NP)에 논의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UTM에 집중하고 있는 일본 쪽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고 NP로 채택되지 않은 아쉬움이 크며, 이를 준비한 황현구 책임연구원의 아쉬움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한편, 아쉬운 와중에서도 한국의 탁승호 박사가 제안한 드론 식별 번호(Drone Identification Number) 체계와 관련된 내용이 워킹그룹 4에 NP로 받아들여졌다. 이 제안은 앞으로 제안자와 자원자를 통해 발전하게 될 것인데, 우리나라 및 우리 기업에 유리하게 발전했으면 한다. 그러나 이는 제안자인 탁승호 박사와 같은 개인이 혼자의 힘이나 개인 만족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주변의 많은 관심과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 드론 식별 번호에 대해 제안하고 있는 탁승호 박사

ISO 표준과 관련하여, 기술적 우위도 중요하지만, 전략적으로 자국 및 자사의 기술이 표준과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유도하는 정치·외교적 식견 및 전략도 중요하다고 본다. 회의장에서 발언자가 앉는 의자 위치에서부터 표준에 대한 해박하고 유창한 외국어 실력까지 무장하지 않으면 이 분야에서 약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운 좋게 내년에 본 SC16의 미팅이 한국에서 열린다고 하니, 우리의 발전된 전략과 전술 그리고 타국의 헛발질을 기대하며 참석해 보겠다. 

로봇신문사 robot@irobo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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