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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

기사승인 2014.01.31  17: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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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신문은 새해를 맞아 신년 시리즈 기획으로 '원로에게 듣는다'를 마련했습니다. 이 기획물은 우리 로봇계가 당면한 현실에 대한 진단과 나아갈 방향을 로봇계 어른들을 통해 직접 들어보는 코너입니다. 또한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통해 젊은 로봇인들에게 꿈과 지혜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 마지막 순서로 민계식(73) 전 현대중공업 회장 편입니다. 민계식 전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 MIT에서 해양공학(박사)를 전공한 뒤 대우조선공업을 거쳐 1990년부터 현대중공업에에서 부사장, 사장,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재임중 현대중공업을 세계 최대 조선회사로 끌어 올리는 한편, 로봇사업부문도 개척하여 한국 최대 로봇기업으로 입지를 다졌습니다. 또 2010년부터 2년동안은 한국로봇산업협회 회장도 역임했습니다.

   
 

[ 대담=서현진 본지 편집고문 ]
마라톤을 즐긴다고 들었습니다. 한때 선수생활도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면서요?
1961년 대학 1학년 때,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가 참가한 서울마라톤대회에서 2시간23분48초로 7위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국가대표로 발탁돼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는데 아버지한테 잡혀 나왔어요. 그때는 마라톤 국가대표를 놓고 진짜로 갈등을 했어요. 모르죠. 아버지한테 들키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300번 가량을 완주했는데 요즘은 나이가 있어서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 참가했는데 5시간에 겨우 들어왔습니다.

인생에서 마라톤은 어떤 의미일까요.
마라톤은 내게 인생의 반이죠. 연습도 많이 했고 뛸 때마다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어요. 기복도 있었고 그때마다 참고 완주했어요. 그게 인생이죠. 그러다가 런너스하이(Runners’ high)라고 구름에 뜬 것처럼 기분 좋을 때도 있어요. 뛰면서 안 풀리는 문제도 풀었고 수많은 아이디어도 떠올렸어요. 남들은 그거 심심해서 어떻게 뛰느냐 그러는데 나는 별별 생각을 다하면서, 구상을 하면서 또 회사 경영기획도 하면서 뛰거든요. 

                          "마라톤요? 내 인생의 절반이죠!"

2011년 현대중공업 퇴임하고 KAIST교수로 가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기업에서는 필요한 게 있다면 자리를 안 아껴요. 그런데 대학은 그러지 못하더라고요. 현대에 있을 때 어떤 분야 전공자를 뽑으려고 전국 대학을 다 뒤져봐도 그런 분야를 가르치는 대학이

   
▲ 동아일보 서울 마라톤 참가(2002년 3월). 이 대회에서 민계식회장은 61살의 나이로 3시간 4분 17초를 기록했다.
없는 경우가 많아요. 산업체에서 필요한 것을 대학에서 안 가르치니까, 뭐 조금만 가르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지 않아도 KAIST에서는 저한테 명예박사 학위도 주고 또 자리를 내주고 오라고 하대요. 거기 가서 학생들 가르칠 교재 두 권을 직접 썼어요. 지금 세 권째 쓰는 중입니다.

오랫동안 경영일선에 계셨는데 학생 가르치는 것은 어떻습니까?
거기(KAIST 해양시스템공학전공)는 대학원생들뿐이어서 학생들은 많지 않은데 좀 답답해요. 기업에서는 내가 얘기를 하면 피드백이 아주 빠른데 학생들은 따르지 않는 경우도 많고, 했는지 안 했는지 체크하기도 어려워요. 강의 전에 칠판 필기가 좋은가, 파워포인트가 좋으냐 하고 물었더니 다들 필기가 좋다고 그래요. 그래서 직접 쓰면서 강의하는데 아무도 안 적어요. 그러다가 지우개로 지우려고 하면 그때서야 스마트폰 카메라로 찰칵, 찍는 겁니다. 또 질문하라고 했는데 아무도 질문하지 않아요. 한 달쯤 지나고 나서 복도에서 어떤 학생을 만났는데 교수님, 질문을 했는데 왜 답을 안해주냐고 해요. 언제 했냐고 하니까, 이메일로 했다는 겁니다. 전부 그런식이에요. 내 방에 찾아오지도 않아요. 이메일로 질문하고 이메일로 답을 하려고 하니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안돼요. 둘이 마주보고 앉아서 종이에 쓰면서 토론하고 그래야지요.

남다른 수재집안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4남 3녀중 남자형제는 모두 경기고 서울대를, 누나들은 모두 경기여고 이화여대를 나왔는데 막내인 나는 그런 형과 누나들에게 항상 머리 나쁘다고 야단맞고 자랐어요. 우리 집안에서는 머리 좋다는 얘기 했다간 큰일나죠. 바로 위 형이 불문학자 민희식 박사인데, 그 형한테 매일 바보 소리 듣고 자랐어요.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들어 갈 때까지 세상에 없는 바보 천치인줄 알았어요.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맨날 놀러 다니고 그랬는데 시험만 보면 성적이 잘 나와요. 그래서 하루는 가족 모두 모여 앉아 식사하는데, 내가 “아버지 제가 머리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가 봐요, 100점 맞았어요!”라고 자랑했는데, 그날 군밤 7대를 맞았어요. 형과 누나들 다같이 와서 군밤 한대씩을 주면서 “이 자식아 우리 형제 중에서 100점 맞은 사람이 너 혼자냐?” 그러는 겁니다. 어렸을 때는 항상 열심히 하라는 말 많이 듣고 자랐어요.

대우에서 김우중회장을 모시다가 정주영회장에게 스카웃됐습니다.
미국 유학 마치고 1979년 대우조선공업 기술연구소장(전무)으로 입사하면서 김우중 회장을 모셨지요. 대우시절, 네 가지를 고민했습니다. 첫째는 기업이 기술개발을 안 하면 성장의 한계가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대우그룹이) 이것 저것 너무 벌린다, 위험하다, 핵심역량에 집중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세 번째는 고유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는 80년대 초반인데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리면 삼성하고 금성 광고판이 크게 붙어 있었습니다. 그때 국내기업의 해외지사장들이 대개 고교 동기나 동문들이었어요. 그들과 얘기해보면 대우도 OEM말고 자가브랜드로 개발하고 수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네 번째는 애프터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봤어요. 당시 대우그룹이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는데 많이 고전했어요. 그 원인 중에 하나가 부실한 애프터서비스였습니다. 나는 이 네 가지에 대해 수시로 김회장에게 보고했습니다. 김 회장은 그때 잠수함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있었어요. 그분이 나보다 고교 4년 선배고 잘 아니까 임마,점마식으로 편하게 말을 했어요. 출장 때면 1등석 옆에 앉혀서 이런 저런 얘기 많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네 가지 고민에 대해 말씀 드렸어요. 

                대우 사표낸 뒤 정주영 명예회장 예고 없이 찾아와

김우중 회장은 기술이라는 건 필요할 때 밖에서 사오면 되는 건데 왜 쭈그려 앉아서 그 짓(기술개발) 하냐고 해요. 나한테는 영업을 총괄하라면서 영업을 강화하라고 해요. 또 우리 브랜드로 수출하자는 말에는 품질과 애프터서비스 책임져야 하는 귀찮고 쓸데 없는 일을 왜 하냐는 겁니다. 애프터서비스에 대해서도 그래요. 장사꾼이 한번 팔았으면 그만이지 무슨 애프터서비스냐는 식이었어요. 3년 동안을 건의했어요. 건의를 받아주지 않으면 대우를 떠나겠다는 말도 세 번을 했지요. 김 회장은 그때마다 붙잡아요. 두 번째까지는 미국도 좋고 독일도 좋고 네가 좋아하는데 아무데나 가서 뭐 몇 년이고 마음대로 지내다 오라며 두툼한 봉
투도 주고 그래요.

   
▲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에 진행된 정주영명며예회장 9주기 추모식(2010년 3월19일)에서 추도사에 나선 민계식 회장.
세 번째는 아무 말이 없으세요. 사표 내고 집에 있는데 정주영 명예회장이 예고도 없이 찾아왔어요. 그때 내 나이가 48세, 정 명예회장이 75세였습니다. 현대로 갔죠. 그리고 나서 얼마쯤 지났는데 미국에 있는 김우중 회장 아드님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문상을 갔는데 그분이 내 손 붙잡고서 그럽디다. 진즉 민박사 말 들을걸 그랬어! 그 뒤 회사가 파산을 했어요. 나는 회사 경영이 무슨 특별한 지식이나 경영대학을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라 봐요. 경영이란 것은 상식에 기반하는 거잖아요.

현대중공업을 세계 최고의 조선회사로 키웠습니다. 에피소드가 많았을 텐데요.
1990년 현대중공업에 와서 보니 배 만드는 회사에 독자 엔진이 없어요. 고유 모델의 디젤엔진을 개발하고 싶었습니다. 그랬더니 다들 미쳤다고 해요. 현대중공업에 당시 사업본부가 4개가 있었습니다. 1992년 각 본부에서 기술 담당하는 사람을 모아 기술개발위원회라는 것을 만들고 매주 회의를 했습니다. 거기서도 디젤엔진 개발은 긴가민가했습니다. 내가 책임진다며 품의서를 만들어 당시 사장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그 때 엔진기계사업본부의 중역 한 분이 품의서를 보더니 확 집어 던지는 겁니다. 다음날 또 보고를 올렸더니 미친놈이라고 해요. 세 번째 들어갔을 때는 육두문자 욕을 하는 겁니다. 결재 받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은 내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남은 자재 얻고 일과 후에 사람들을 불러모아 단기통 발전 엔진을 만들어 계속 보완 했어요. 1997년쯤 그게 될듯하니까 회사가 지원하대요. 2000년부터 판매하려는데 막상 조선사업본부에서 안 쓰겠다 그래요. 한국산 엔진을 쓰면 선주들이 배를 안 산다는 거죠. 그래서 내가 그 당시 세계적으로 제일 큰 규모의 독일 콘테이너 선사를 찾아갔어요. 거기 사장이 기술자에요. 너도 기술자고 나도 기술자니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자, 우리 엔진 써보고 좋으면 6개월 내에 돈을 내고, 아니라면 너희가 원하는 걸로 바꿔 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3개월 후에 돈을 다 받았어요. 그렇게 해서 5대를 팔았습니다. 그 회사가 우리엔진을 썼다고 그러니까 다른 회사들도 따라서 쓰는 거죠. 품질 좋죠, 값싸죠. 더 이상 뭐가 필요합니까. 그게 요즘은 세계 시장 점유율이 28% 정도 됩니다 연간 2000~3000대씩 팔립니다.

                         비서 퇴근시키고 새벽 2~3시까지 근무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만 무려 10년 넘게 하셨습니다. 재임시 현대중공업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고요. 비결이 뭘까요.
비결이랄게 뭐 있나요. 있다면 '노력'이죠!. 머리야 다 비슷비슷할 테고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항상 말씀하셨어요. 너 같은 실력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아주 많다, 사회에 나와 일가를 이룬 사람들 대부분은 다 너만큼의 머리를 갖고 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아주 잘났거나 열심히 노력하는 것 둘 중의 하나다, 너한테는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렇게요. 현대중공업에서는 보통 퇴근을 새벽 2시 3시에 했어요. 그리고 아무리 늦어도 6시에 일어나서 6시 30분부터 조찬회의를 해요. 그러니까 거의 미친 상태로 일을 한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래요. 최고경영자가 그렇게 열심히 하면 밑의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겠냐고요.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죠. 나는 6시 되면 비서 다 퇴근시켜요. 커피도 내가 끓여먹고 전화도 직접 받고 복사 같은 것도 내가 하지요. 중역들한테는 6시부터 1시간 정도는 자기 정리를 하고 가라고 해요. 그리고 일주일에 한 두 번은 10시까지,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주말근무를 하라고 합니다. 사실 중역이라면 그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일하긴 하죠. 그런데 일반 직원들은 정시에 퇴근시켜요. 물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지는 않겠지요. 뚜렷한 목표와 이상이 중요하죠. 우리 회사를 세계 제일로 만들겠다든지, 내 전공이 조선해양 분야이니 조선공업을 세계 1등으로 만들겠다던지 하는 식으로요. 나는 결국 1등의 목표를 이루었지요.

   
▲ '노력'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하는 민계식 전회장. 현대중공업 재직시 작업복을 입고 작업현장을 찾은 민 전회장.
현대중공업은 한국 제일의 로봇기업이기도 한데, 로봇사업을 키우는 과정에도 곡절이 있을 듯 합니다.
형님회사(현대자동차를 뜻함)에서 로봇 수요가 많았잖아요. 그런데 처음부터 일본의 가와사키와 야스카와 것만을 썼어요. 그런데 명예회장께서 왜 일본 로봇만 쓰는가, 수요가 많아지고 있는데 우리 것 한번 만들어봐라, 해서 로봇개발 전담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10년 넘도록 적자에 허덕여요. 가와사키 기술을 라이선스로 들여와 만드는데 더 이상 발전이 없어요. 가와사키에서는 새로운 모델을 넘겨 주지도 않고요.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회사 사장을 하던 분이 협력사가 관계된 부정을 저질렀어요. 그게 1992년입니다. 그래서 그 회사를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던 참인데 내가 나섰어요. 그 동안 쌓아놓은 경험과 시설이 저렇게 많은데 내가 한번 맡아서 해보고 싶다 했더니 그룹에서 그럼 너희가 가져가라고 해요. 그래서 엔진기계사업본부 안에 로봇사업부가 만들어진 겁니다.

                    애물단지 로봇전담회사를 현대중공업에 편입

처음부터 로봇사업에 대한 복안을 갖고 있었습니까?
사실은 그룹에서 로봇회사를 없애자고 할 때부터 로봇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관계자들을 모아 로봇사업부에서 어떤 아이템을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갖은 얘기가 다 나와요. 소니의 애완견 로봇에서부터 심부름로봇, 방범로봇 등등 별별 아이디어가 다 나왔어요. 아이디어와 관련 있는 로봇 중소기업들 다 찾아 가 봤습니다. 내가 사장에 오른 1998년까지 계속 그 일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런데 방범용 로봇을 보니까 CCTV보다 별로 나은 게 없어요. 심부름 로봇도 물을 떠오는 것을 보니 그 준비과정이 더 복잡해서 차라리 사람이 물 떠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결국 그런 아이디어들 다 접고 용접로봇, 핸들링로봇, 더티워크로봇 같은 산업용 로봇 3종만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적자로 시작했는데 사업에 집중한 2년째 가서 흑자가 났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따지면 12년 만에 흑자가 난 셈이지요. 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공장 납품을 놓고 야스카와와 경쟁해서 이긴 적도 있어요. 국내공장에는 우리 로봇으로 다 교체했지만 앨라배마 공장은 그때까지 야스카와가 우리보다 6% 정도 싼 값으로 납품을 했어요. 그런데 야스카와는 부품이나 애프터서비스 비용이 엄청 비쌌어요. 결국은 우리가 공개입찰에서 이겼죠. 그 뒤에 슬로바키아 공장, 베이징 공장 다 우리 것이 들어갔어요.

산업용 로봇이 본궤도 오르니 다른 분야 확장 계획도 나왔지요?
그 다음에 액정로봇을 시작했습니다. 모니터에 액정 조립하는 로봇이죠. 이 로봇은 어떻게 보면 로봇 같지도 않을 만큼 간단해요. 기둥에 팔 몇 개 붙어 있는 모양인데 당시 삼성에서는 가와사키 로봇을 썼습니다. 삼성 자체적으로 개발한다 해도 그리 어렵지 않은 로봇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찾아가 너희가 원하는 대로 싸게 개발해주겠다고 제안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대요. 같은 조건으로 LG에 갔더니 LG쪽에서는 제안을 받아들여요. 다만, 개발한 로봇을 나중에 자기네 동의 없이 판매하지 않는다는 조건만 지켜달라는 겁니다. 무한정 약속할 수는 없고 3년간만 지키겠다고 하니, 그렇게 하자고 해요. 그래서 LG의 지도를 받으면서 액정로봇 개발에 성공했어요. 그 로봇 투입하면 사람이 48분 걸리는 작업을 18초로 단축할 수 있어요. 그때 1세대, 2세대 해서 8세대까지 개발했는데, 지금은 10세대가 넘었을 겁니다. 이 로봇을 LG와의 합의 아래 중국과 대만에 팔았어요. 나중에는 결국 삼성에서도 찾아 오더군요. 그래서 LG에게 사정을 말했더니, 삼성은 안 된대요. 하하하.
   
▲ 제3회 협성사회 공헌상 과학기술부문 수상(2013년 12월). 골프 박인비선수, 김지하 시인 등도 보인다. 맨 오른쪽이 민계식 회장. (사진 연합뉴스 제공)
최근에는 의료용 로봇 사업에도 본격 진출했더군요.
처음부터 과감하게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 내부에서 견제가 무척 심했어요. 내부에서 대표이사가 둘이었는데 의견이 달랐어요. 나는 의료용 로봇 만들어서 미국 병원에 하나씩 보내 써보고 좋으면 돈을 내라고 할 참이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자금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다른 대표이사는 조선밖에 모르는 사람이에요. 조선 말고 다른데 투자하는 거는 무조건 반대 해요. 물론 특허 같은 것도 피해가기가 쉽지 않았고요. 정몽준 의원을 찾아갔더니, 이쪽 일을 잘 모르니까 의논을 잘해서 결정하라고 해요. 그런데 그게 쉽게 됩니까. 결국 의료용 로봇사업 시작이 많이 늦어졌는데 지금 생각하면 많이 안타깝지요.

           한국로봇산업협회 회장 재직시에는 중소기업 보호에 역점

로봇사업부를 다시 독립시킬 계획은 없었나요?
독립회사로서의 장단점을 충분히 경험했잖아요. 독립하면 약해져요. 현대중공업 같은 거대회사가 좋은 것은 규모의 경제나 규모의 조직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겁니다. 현대중공업에 영업기술개발본부가 있는데 한때 사람들이 그 본부를 제품별로 운영하자고 했습니다. 로봇연구소, 엔진연구소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연구 분야는 기본적으로 공통 분야를 다 갖고 있어야 되잖아요. 예를 들어 진동이나 소음 구조 이런 거는 공통기술인데, 만약 제품별로 연구조직이 나눠지면 그 조직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해요. 사람이 엄청 많아지겠죠. 그런 것을 기술개발본부에서 해주면 효율적이잖아요. 실제 로봇을 개발하다 보면 진동 문제 때문에 아주 곤란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팔이 내려가다가 멈추지 않고 흔들린다거나, 자동차에 유리창 장착하는 로봇이 흔들려 봐요. 초기에는 그런 일들이 많았어요. 그런 문제들을 기술개발본부에서 다 잡아줬거든요. 현대중공업에서 로봇부문 매출이 수천억 원씩 할 때도 실제 전용 기술개발인력은 몇몇 안돼요. 현대중공업 전체가 20조~30조원 매출 올리는데 600여명의 연구요원 가운데는 공통 요원들이 많아서 이것 도와주고 저것 도와주고 아주 효율적입니다. 그런데 기업이 독립하면 그런 연구인력 비용을 어떻게 조달하겠습니까. 중소기업이 크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거기에 있지요.

한국로봇산업회장을 맡았던 2010년과 2011년이 우리나라 로봇산업의 최대 호황기였습니다. 특별한 처방이 있었나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항상 “올바르게 살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어요. 내 일생의 꿈도 공정한 세상, 부정부패 없는 세상입니다. 세상만사는 페어(fair) 해야죠. 내가 비록 소속은 현대중공업이었지만 한국로봇산업협회 회장을 맡았을 때 아주 공정하게 하겠다, 다같이 발전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임했어요. 그런데 회장단 일부가 자꾸 자기네 회사에 유리하게 하려고 해요. 그런 일들을 엄하게 금지시켰지요. 협회장 임기 끝나니, 그렇게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분은 처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열심히 하는 중소기업들은 현대중공업에서 도와주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중소기업이 잘되면 꼭 대기업이 참여해서 시장 흩트려 놓아요. 청소로봇만 해도 그래요. 협회장 자격으로 LG에 가서 당신네 회사 몇 백대 이상은 만들지 말아달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한 것을 대기업이 끼어들면 산업 자체가 안 된다고요. 중소기업이 허리인데 그 허리를 보전해줘야지, 왜 허리를 꺾느냐고요. 재임 중에 또 오픈팩토리라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회원사 관계자들이 회사를 방문해서 현장을 견학하면서 자유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너희는 이게 좀 부족하니, 이걸 좀 향상시키면 좋겠다, 그걸 개발하면 좋겠다, 어디에 적합하다, 이런 얘기들을 스스럼없이 하는 자리였거든요. 처음엔 영업비밀이다 해서 안 보여주려고 하더니 나중엔 자연스럽게 심층 토론하고 서로 도움을 받고 그러더라고요. 
   
▲ 로봇기업들이 현장을 찾아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주고 받는 오픈 팩토리 프로그램. 민계식 회장과 한국로봇산업협회 관계자들이 LS메카피온 대구공장을 찾아 의견을 듣고 있다.(2011년 3월)

                 정부 역할은 대형 아이템 아이템의 발굴과 지원

로봇 기업들이 어려운데 지금 당장 필요한 정부의 역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로봇 분야는 대규모로 산업화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런 것을 찾아야 하는데 찾는 게 상당히 어렵죠. 현대중공업에서는 군인이 200kg의 짐을 지고 시속 10km 이상 달릴 수 있는 하지근력증강로봇을 개발 중입니다. 그런 로봇은 군사용뿐 아니라 일반 산업에서도 많이 쓸 수는 있어요. 신체 장애가 있는 사람도 활용할 수 있고요. 휠체어 타는 사람이 그걸 입으면 걸어 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정도면 대규모 산업화가 가능해요. 예를 들면 정부가 그런 것들은 발굴해서 도와줘야 합니다. 아니면 여러 회사가 힘을 합쳐서 개발할 수 있도록 유도하던지요. 중소기업들 역시 2~3개 아니면 5~6개 기업이 연합해서 정부로부터 많은 돈을 지원받을 수 있는 큰 아이템, 이를테면 인공지능 같은 프로젝트를 발굴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한국로봇산업협회장 할 때도 재난로봇 개발 같은 대규모 사업을 발굴하고 싶었어요. 재난 로봇은 사회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이잖아요. 유망한 중소기업들을 몇 개 골라서 그 일을 맡겨 중견기업으로 도약시키고 싶었어요.

현재 한국로봇산업협회 회장이 오랫동안 공석인데…
하하하! 나는 이미 현직에서 떠났어요.

그동안 최고경영자로서 또 산업 단체장으로 정부의 산업진흥정책 많이 겪어보셨을 텐데, 우리 나라 산업정책은 몇 점이나 줄 수 있을까요.
점수를 매기기는 좀 어렵겠지만, 아쉬운 점은 분명 있어요. 세계에서 산업정책이 가장 이상적인 나라가 핀란드에요. 핀란드는 정부 관리와 기업체 직원이 수시로 자리를 바꿔 근무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책담당자들이 현업을 잘 몰라요. 정운찬 전국무총리가 내 고교 6년 후배에요. 대학도 후배고요. 그리고 그분이 경제학자이니까 그분을 한 달에 한번씩 모셔다가 전부서장을 대상으로 특강을 열었어요. 그분이 계속해서 '초과이익공유제'라는 걸 주장했잖아요. 그래서 한번은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그걸 간단명료하게 설명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그분이 그래요. 이를테면 어떤 기업이 연초에 사업계획을 짤 때 예상되는 이익이 100이었는데 연말 되니 150이 됐다면 50은 공유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주 완곡하게 내 생각을 말했습니다. 대단히 기발하고 좋은 착상이지만 두 가지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첫째 나라면 사업계획을 짤 때 100정도 이익이 날 것으로 예상이 되면 300이라고 사업계획을 짤 거다, 그렇게 하면 절대로 초과이익이 날 수 없다, 두 번째는 기업이 항상 이익만을 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초과 손실이 났을 때도 그 손실을 공유해야 하지 하겠느냐, 그랬더니 대답을 못하는 겁니다. 초과이익 공유하면 초과 손실도 공유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게 페어플레이죠. 

   
▲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출범식 케익커팅 행사(2010년 7월12일)에서 민계식 한국로봇산업협회장(맨 오른쪽). 당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과 주덕영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초대 원장등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나라 정책담당자들은 현업을 너무 몰라요"

또 지금 새 정부 들어서 경제민주화다 뭐다 해서 일감몰아주기 같은 것을 규제하는 정책만해도 그래요. 사실은 기업 입장에서는 업무나 효율성이나 이익 증대를 위해 계열사를 나누는데, 그 계열사를 다시 다 통합하면 일감 몰아주기라는 게 어디 있겠어요. 다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데, 그거 피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죠. 그런데 그걸 과징금을 물리는 정책을 내놓는 것을 보면 정부관리가 현실을 너무 몰라요. 그런 식의 정책을 자꾸 내면 대기업엔 별로 해당사항이 없고 중소기업만 피해가 가요. 좋아지는 건 외국기업뿐이고요. 대통령이 엊그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짜겠다고 그랬는데 정말 그렇게 뭘 모를까 싶어요. 예를 들어 5개년 계획을 추진하겠다 하면 계획을 세우는 데만 1년 이상 걸려요. 수치만 나열하는 게 계획이 아니잖아요. 제일 답답한 게, 우리나라 기업들이 사업계획 짜는 거 보면 수치만 나열해요. 어떻게 달성할건지 방법을 정해야지요. 자신이 그 자리에 있거나 없거나, 누가 후임이 되던지 그 매뉴얼 보면 그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되거든요. 3개년 계획, 그거 이제부터 준비하면 언제 짜겠느냐는 거죠.

독서량이 굉장히 많다고 들었습니다.
철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내 서재에는 필자가 모두 다른 알렉산더대왕 전기 9종이 있어요. 그것들을 모두 읽고 나름대로 알렉산더가 왜 그렇게 위대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운송수단과 교통사정이 좋지 않았을 그 시절에 대체 알렉산더가 어떻게 10여년 만에 그리스에서 유럽, 아시아까지 정복했을까요. 또 알렉산더가 당시 세계 최강이던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잖아요. 그러면 됐잖아요. 그런데 장군들과 병사들을 설득해서 이웃나라 치고 쳐서 인도까지 갔어요. 그런데 인도에 가니 장군들과 군인들이 더 이상 설득이 안돼요. 하루빨리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해요. 아마 설득이 됐다면 중국까지 갔을지도 몰라요. 또 그전에 페르시아를 칠 때 페르시아 해군력이 10배나 강해서 알렉산더 군대가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알렉산더가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하는 것들을 나름대로 연구해서 그 결과를 ‘알렉산더의 딜레마’라고 이름을 붙여 경영에 적용했죠.

춘추전국시대 고전도 많이 섭렵했다고 들었습니다.
장자 내편에 '무용의 용'(無用之用)이란 말이 나옵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을 가다 엄청나게 큰 나무를 발견해요. 사람들이 무리가운데 제일 어른에게 “어떻게 이렇게 큰 나무가 있습니

   
 
까?”라고 물으니 그가 “그 나무가 쓸 모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요. 쓸 데 없으니까 사람들이 건드리지 않아서 그렇게 컸다는 거죠. 그런데 이제 그 나무가 신기해서 관광하러 오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쓸 데가 생겼다는 겁니다. 그게 ‘무용의 용’이지요. 나는 이 이야기를 경영에 적용했습니다. 현대중공업 재직 때 어느 날 일안하고 놀기만 하고 쓸데없는 사람들 명퇴시키자는 명단이 올라와요. 한 100여 명쯤요. 우리나라에서 명퇴시키기 참 어렵죠. 3년치 월급을 미리 주고 나가게 하는 건데 안 나가려고 하죠. 게다가 한 명이라도 명퇴시키면 전 직원이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일을 못해요.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6년간 대기업 몇군데서 일한 경험이 있어요. 그때 미국기업들은 사람들을 너무 쉽게 내보내요. 그러면 나가는 사람들이 지독한 악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어요. 그걸 보면서 난 절대로 그런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어요.

                      "누구에게나 특장점 하나씩은 다 있지요"

현대중공업에서 대표이사 재임하는 10여 년 동안 난 단 한 명도 그렇게 내보내지 않았어요. 일년에 한번씩 전 사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얘기해요. 내가 있는 한 너희들은 사규를 어기지 않는 한 내보내지 않을 테니까 열심히 일하라고요. 그렇다면 쓸모 없다고 중간관리자들에 낙인 찍힌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 방법이 다 있지요. 100여명 명단에 올라오는 친구들을 보면 각기 특장점은 하나씩은 다 있어요. 어떤 친구들은 지역 주민들 관리하는 것을 무지 잘해요. 그들에 그 일을 맡겨주면 신이 나서 일을 해요. 사실은 그들이 쓸모 없는 게 아니라 리더들이 그들에게서 쓸모 있음을 찾아내지 못하는 거죠.

리더의 역량은 결국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인가요?
뭐 그렇게 거창할 것 까지는 없고요. 내가 무슨 재주는 없지만 어떤 이상은 갖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아래 평등하잖아요. 그게 나의 용병술이에요. 나는 사람을 차별한 적이 없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그렇게 교육받았어요. 5살이 돼 글을 배울 때 아버지는 내게 절대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 것부터 가르쳤어요. 유엔인권헌장 서문이 "Man is born equal by nature"라는 구절로 시작해요. 우리 말로 번역하기가 어렵다는데 굳이 번역하자면 “사람은 날 때부터 평등하다” 쯤이 돼요. 그때 아버지께서 그 구절을 영어로 써서 내 목에 걸어 줬어요. 외우라고요. 아버지께서 가끔씩 "인간 관계는 어떻게 해야지?"라고 물으세요. 그러면 나는 재빠르게 "Man is born equal by nature"라고 답해야 했어요.

요즘 선진사회만들기연대라는 사회단체 활동에 열심이신데…
우리나라가 세계사람들이 놀라워하는 경제발전을 이룩했죠. 그런데 양말짝 만들고 옷 좀 수출한다고 선진국이 되나요? 선진국은 정신과 물질이 같이 발전해야 하거든요. 우리가 물질적인 면은 많이 발전했지만 정신적인 면은 아직 그렇지 못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정신적인 발전을 통해 정말로 선진국이 되자, 이제는 문턱에서만 헤매지 말고 정말 선진국이 되자는 의미에서 선진사회만들기연대(선사연)를 만들었는데 내가 거기 공동대표에요. 지금까지는 기금이 많지 않아 큰일은 못하고 주로 홈페이지에 칼럼을 나눠 쓰면서 선진국에 대한 우리 식의 정의나 정치선진화 같은 주장을 펴왔어요. 그래서 내가 그런 거창한 일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자고 제안했어요. 현재 교육과 한글 표준화 같은 주제들이 이슈로 올랐어요. 특히 교육 분야에서 폐단이 많은 교육감 직선제나 선거제를 폐지하자는 의견을 모아가고 있어요. 회원 중에는 전직 장관, 전직 국회의원, 법조인 등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선사연에서 국회의원도 나와야 한다고 해요. 그러면 그때마다 내가 순수하지 못하다, 그런 목적으로 우리가 선사연을 만들었느냐고 합니다. 보수색이 짙다는 비판도 있는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요즘 보수와 진보, 그렇게 구분하는데 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에요. 온고이지신이란 말도 있지만 옛 것에서 많이 배워야 하고 좋은 것은 지키되 좋지 않은 것이나 비합리적인 것은 고쳐야죠. 또 고치는 것은 과감하게 해야 합니다.

                                "언제나 진인사대천명..."

앞으로 특별한 활동계획이 있나요.
거북선과 임진왜란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거북선이라고 해서 조선(배만드는) 얘기는 아녜요. 사람들이 거북선에 대해서 잘 몰라요. 거북선이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고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남해에서 거북선을 찾으려고 해군 특수부대가 나섰는데 한 척도 발굴이 안돼요. 임진왜란 당시 16척이나 있었다

   
▲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민계식회장.(사진 조선일보 제공)
는데요. 내가 지난 30년 거의 모든 역사 기록들을 다 검색해봤어요. 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게 1795 년(정조 19년)에 복원했다는 거북선과 이순신장군에 관한 기록이에요. 그런데 모두 엉터리에요. 그래도 사료 가운데 가장 믿을 만한 것은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난중일기입니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정조 때 복원한 거북선은 전쟁을 할 수 없는 배에요. 그렇게 복원한 거북선으로는 백전백패입니다. 예를 들면 거북선에는 노를 젖는 격군이 타요. 이순신 장군은 격군을 얼마나 위했는지 몰라요. 전쟁할 때는 격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원균은 격군을 밤새 혹사시켜 패전의 원인이 됐어요. 막상 전투할 때는 지쳐 노를 젖지를 못해요. 돌격했다가 재빠르게 빠져 나오고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해요. 또 거북선은 포갑판과 노갑판이 달라야 하는데 정조 때 복원한 것은 두 갑판이 같이 있어요. 대포를 쏘면 확 밀려나오는데, 그러면 다 죽어요. 산발적으로 나온 거북선 논문들도 다 틀려요. 자기상상일 뿐입니다. 지금 30년동안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거북선에 관한 책을 쓰고 있어요. 올 연말쯤 탈고할 예정입니다.

들려주고 싶은 경구 한마디...
좋은 말이 너무 많아요. 한마디만 골라내기는 어렵지만, 하여간 한마디로 이야기 하라고 하면 나는 언제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꼽아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겁니다.

[민계식 전회장 주요 이력]
1942년 서울출생
1965년 서울대 조선공학과 졸업
1970년 미 UCLA 조선항공 및 우주항공학 석사
1978년 미 MIT 해양공학 박사
1972~1974년 미 제너럴다이내믹스 전기보트사업부 근무
1978~1979년 한국선박해양연구소 유체역학연구실장 겸 선박설계사업실장
1979~1990년 대우조선공업 기술담당 전무 겸 기술연구소장
1990~2000년 현대중공업 기술개발담당 부사장
2001~2004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CEO/CTO)
2004년 제어로봇시스템공학회 회장
2004~2010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
2008년 한국태양광산업협회 회장
2010년 한국로봇산업협회 회장
2010~2011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회장
2013년 KAIST 해양시스템공학전공 교수
2013년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기타>
기술논문 280편
특허 300건
마라톤 완주기록 2시간23분48초
산업포장(1981) 3.1문화상(1982) 철탑산업훈장(1984) 한국공학상(1985) 과학기술훈장 웅비장(2001)한국경영대상(2005) 최고과학기술인상(2008) 협성사회공헌상(2013)

서현진 기자 suh@irobo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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